격암유록이 위서인지 아닌지, 그리고 신천지는 왜 격암유록에 목을 메고 있는지요?


격암유록이 위서인지 아닌지, 그리고 신천지는 왜 격암유록에 목을 메고 있는지요?
 
(펌글)
http://cafe.daum.net/nuclearpig/Fmxw/420?q=%B0%DD%BE%CF%C0%AF%B7%CF%20%C0%A7%BC%AD


우선 여기 인용한 책들가운데서 반대하는 의견은 책을 쓴 저자와 출판사에  하시기 바란다. 도서관에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인용했을 뿐임을 명백히 밝힌다.

국립도서관, 남산도서관등 여러도서관등에는 격암유록에 대한 책이  거의 30권에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을 모두 읽어보면 격암유록이 어떠한 책이라는 것을 금방알수가 있고..
 
더군다나 PD수첩에서도 1995년 9월 26일 MBC 문화방송국의 PD수첩에서 고발한 내용 "위대한 예언서인가? 희대의 조작인가?"에서 다루었던 내용이다.

제목: 위서 "격암유록"
 
1.격암유록이 먼저인가 정감록이 먼저인가?



곧 남사고의 예언보다 후대에 나온책이 정감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사고의 격암유록에서 정확하게 정감록의 책이름과  저자의 정확한 성씨 그리고 "정감록에 의하면"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은 만인이 공인하는 위서 정감록과 마찬가지로 격암유록도 조작  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신채호 역시 정감록을 가르켜서 분명한 "위서"라고 했다.

2.격암유록에 나오는 현대(現代)의 언어들



철학(哲學)-->철학이라는 단어는 기껏해야 100여년 전인 19세기 말 (대략 1870년대)에 일본이 서양문물을 수입하면서, 영어의 'philosophy'라는  단어를 번역하여 만든 '신조어(新造語)'인 것이다.('갑을가'에 나옴)
기계, 가목(假牧-->가짜 목사라는 뜻), 철인(哲人), 과학(科學),
세계(世界), 유행(流行-->가장 웃기는 부분이라고 생각함.),
원자(原子--->남사고가 원자폭탄의 이름까지 알다니~!),
출마(出馬-->국회의원 출마라고 할려고 했나?),
좌우(左右), 인도(印度), 불국(佛國), 영미(英美),
연구자(硏究者--> 남사고도 식민지 교육 받았나?),
공산(共産), 해운개(海運開), 각국유람(各國遊覽), 이십세(二十世),
정전(停戰), 군정(軍政--> 글을 쓴 것이 1970년대라는 확실한 증거)등
도로(道路)-->일본식 한자로 조선시대에는 '로(路)'라고만 하였다.
작업(作業)
건설(建設)-->웬 건설?
사업(事業)--->남사고가 사업을 다알고
목욕탕(沐浴湯)-->남사고가 일본식 목욕을 다알고 있다...우헛헛
정차장(停車場)-->그때도 차가 있었나?
반도(半島)-->반도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낮춰서 부르는 말...
발행(發行)
도매금(都賣金)
피난처(避難處)
승리(勝利)
계획(計劃)
이루헤아릴 수 없이 많다.

19C국어학자 주시경보다도 국어의 변천을 잘알고 있다.
웃기는 노릇~!

3.격암유록에서 성경을 베껴 쓴 확실한 증거.....
 
격암유록에 대해서 쓴책중에 상당한 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해석에서도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다음부분들이 성경과 일치하며
모두 성경의 장과절을 한문으로 표기 했다.
(이것은 성경을 직접 격암유록과 비교해서 보시길 바란다.)
 
⑴목사 격암 남사고....

그분의 목소리는 하늘의 우레 소리가 진동하는 것 같고, 그분의 몸은  순식간에 번개 같은 광채가 두루 비추는 것 같네....(기독교 믿는 분들
이것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아닌가 생각해보라)

⑵성경의 몇장 몇절까지 아는 예언자....
 
격암유록 가전(歌前)편에

직역 허다한 죄를 범하는 가운데 몸 밖에 죄가 있으나 몸 안에 죄를 짓는  것 같이 가장 흉악한 죄이네...
몸안제 죄를 짓는 것을 청춘남녀가 삼가고 또 삼가야 하네
육육일칠일팔(六六一七一八)--->내용과 장절을 찾으면 정말 고린도전서의 7장13절에서 18절의 성경구절과 같다.

계속하여...........
여하튼 부부가 이혼하지 않도록 하소. 아내는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마소.
어진 남편이여~! 짐승 같은 아내가 함께 살기를 좋아 하거든 저를 버리지 마소..
어진 아내여~! 짐승 같은 남편이 함께 살기를 좋아 하거든 저를 버리지  마소.
짐승 같은 남편이 어진 안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짐승 같은 아내가  어진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됨을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성경의 원문 (고린도 전서7장 10-14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지금껏 여러분들 께서는 목사 남사고의 주일예배를 보았다.
소감이 어떠신지?
 
①라마단이(羅馬簞二) 편
 
내용이 성경의 로마서 2장 6절에서 16절까지와 동일하며 원문 끝에  육육십육(六六 十六)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장과절과 동일하다.
(장과절까지 동일하다니...)

②라마일 이십삼조(羅馬一 二十三條)편
 
내용이 성경의 로마서 1장 28절에서 32절과 같고... 성경의 장과절이 아예 이부분의 제목으로 되어 있다.

③가전편에



내용이 성경의 고린도전서 7장 13절에서 18절까지와 같고  역시 원문에 육육일칠일팔(六六一七一八)이라고 성경의 장과절을  명확히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이것은 고린도전서의 7장 13절에서 18절까지와 동일하다.
 
④성경을 베낀 더욱 결정적인 증거
 
홍콩성서공회에서 발행한 성경에는 <이사야서>를 이새아서(以賽亞書)로, <로마서>를 '라마서(羅馬書)'로, < 고린도전서>를 '가림다전서(哥林多前書)'로 쓰고 있다. 성경의 내용을 베끼다 못해 제목까지 그대로 베낀 것이다. 혹시  누군가가 눈치책 지도 모르기에, 그 중 한두 글자를 따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나서 다시 한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 새삼오>는 <이사야서(홍콩명:이새아)>35장을, <새사일>은
<이사야서> 41장을,
< 라마단이>는 <로마서(홍콩명:라마서)>2장을, <라마일 이십삼조>는
<로마서> 1장 29절부터 31절 까지를
<가전>은 <고린도전서(홍콩명:가림다전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제목 뿐만 아니고, 장번호까지 그대로 붙여서 쓰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혹자는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남사고 선생이 성경을 참고 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며 반박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이 중국에  전래된 역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반박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⑤성경(성서)가 중국에서 들어왔나?



우선 중국의 경교(기독교의 한갈래)에서 펴낸 책이다.



(가) 경교의 성서번역
주후635년 당태종 당시 경교 선교사 아라본은 황제를 처음으로  접견할 때 경교 서적 530권을 진상하였으나 모두 외국어로 되어  있어서 태종이 해독할 수 없었으므로 황제는 사원을 한동 건축하게  하여 아라본과 그 일행 21명을 그 곳에 거주케 한 후 경교성서를  번역하게 하였다. 이 때 한학자이며 경교사인 아남으로 하여금  중국어 번역을 돕게 하였다.
그들은 30여 종을 번역하여 당 태종에게 바쳤다. 번역한 책들은  신*구약성서에서 중요한 책들로서 상명황락경외 34경이며(정확한  자료를 요구하시면 드립니다.35경의 이름모두) 이책들은 모두 파리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로마서와 고린도 전서는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경교연구가 이시다교수는 경교 경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 했습니다. "첫째 서총미시소경은 당나라 예수교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이다. 돈황석실에서 발굴되었다. 한문으로 기록한  경교의 경전을 엄밀히 따지면 역본이라 하기에는 의심나는 곳이 너무  많다고 할수 있다. 새로운 저작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경전을 번역한  것이라고도 할수 없다."이렇게 말했다.(자료는 더 있음)
즉..경교의 경전에는 격암유록에 나오는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는  없다.
즉, 남사고의 격암유록은 중국경교와는 상관이 없단 말씀이다.

(나)천주교의 성서번역
 
천주교에서 성서번역은 명말 청초 천주교 예수회선교사 신부들이 각종의 천주교 신앙서적들을 번역하였다. 자료는 다음과 같다.

라명견(P.M.Ruggieri) 1548년 천주교 실록
리마두(Matteo ricci) 1593년 천주실의
방적아(P.De Pantoja) 1535 수난시말
애유락(J.Aleni) 1636 천주강생언행기략(남사고 이후)
양마낙(E. Diaz) 1636 성경직해(남사고 이후)


이상의 번역문은 성경요외와 기사를 소개한 것 뿐이고 성경 원본에  대한 번역은 없었다. 즉, 고린도전서와 로마서는 남사고가 용을 써도  남사고 살아생전 1500년대에는 못구한다는 이야기 이다.
성경 원문번역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500년대 남사고와는 최소200년의 차이가 생긴다.)

우리나라에 성경이 들어온 것은 공식적으로 것은 18C이다.
성호이익(1681~1763)를 중심으로 한 서학파는 현실적 실천이 없는  성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한역서학서를 읽은  것이다.

그렇다면 격암유록의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는 최대로 올라가 봐야 18C라는 것이다. 남사고의 1500년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생긴다.
즉, 어떤 누군가가 격암유록을 위조한 것이다.

4.80년대 이후의 예언....

①내맘대로의 해석은 곤란합니다.
 
다음의 글은 "격암유록"책중에서 남XX씨가 쓴 글이다.
이글에서 남XX씨는 1995년 9월 26일 MBC 문화방송국의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기한 의문을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였으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해석한 것이다.

1992년 대선에 관한 내용
八鄭之中 三傑一人 靑眉大將 異陵非衣 人三四維
千人得生 分國爭雄 三傑之人 南步老將 白首君王

남XX씨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여덟 번째(八)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민주주의 적으로(鄭) 진행되는 가운데(之中), 세분의 후보자(三)가 득표를 많이  하는(傑)데 그 중 한분(一人)이 文으로(淸眉)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大將)이 된다. 그는 특이하고 (異) 능가한(陵) 정치가이며  물욕을 부리지 않고(非衣) 세분의(三人)의 보좌관과 함께 사방을  개혁하여(四維) 천사람(天人)을 잘살게(天人得生)한다.

위에서 남XX씨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어 물욕을 부리지 않고  국민을 잘살게 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가?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은 몸통과 깃털이되고 그의 가신들은  개혁을 하기 보다는 뇌물먹는 것을 제일로 알았으며 김영삼은  결국 만고의 역적이 되어 있다. 특이하다는 것은(머리가 특이하게 나쁜 김영삼)인정하겠으나 사방을 개혁하고 국민을  잘살게 한다니요? 정말 개가 지나가다가 웃을 소릴 하고 있다.
경제청문회는 어떻게 꿰어 맞추실려는지 궁금하다...
물론 책이발행된 연도에는 김영삼과 IMF를 몰랐을 테니까....

또다른 사람 강XX씨의 원문해석
세명의 영웅가운데 한 사람의 뛰어난 장군이 청미대장(靑眉大將)이네,
다른 능에서 나온 사람이네. 예전에 임금의 옷을 입지 않았던 비의 (非衣)가 인왕사유(人王四維)이며 많은 사람을 살리네

두사람 모두 서문에서 자신의 해설만이 옳다고 주장했고, 타인의 오류가  대단히 안타깝다고 했다.
니맘대로, 내맘대로, 오야맘대로, 엿장수 맘대로의 해석은 곤란하다.
학문하고 글을 읽는 자세가 아니다........

5.남사고 목사 예언에 삑사리 나다~~!

다음은 격암유록의 길지가편의 완역이다.

단기4300년이 가까이 다가왔네. 1968년이 이르렀네.
고해(苦海)에 빠져 있는 중생들 모두 오소. 구원의 방주가 높이 떴네. 풍랑의 파도가 흉흉하고 파도가 산같이 밀려오나 두려워 마소.
하느님의 장막에 특별한 새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해인(해인)의 조화가  나타나네.....

원문.
四三雙空近來로다 一九六八당치헨네 苦海衆生다오너라 救援枋舟
놉히떳네 風浪波濤洶洶하나 山岳波濤두려마라 神幕別乾坤海印造화낫타난다.

위에서 남사고는 그렇게 외치년 단기4300년(1968년. 계산해보라...)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나고 노아의 방주(어떻게 알았을까?)가 뜬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목사니깐 방주를 알았을 수도 있지..........) 


6.서체의 변천
 
여기 쓰는 한글은 기껏해야 일제시대때의 한글의 철자법들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사가가 역사서를 쓰면 전체를 한자로 쓰던지  전체를 국*한문 혼용체로 쓴다.
하지만 격암유록은 절반은 한문체이며 절반은 국*한문 혼용체이다.
결국 글을 쓴 사람이 다른사람이라는 증거이다.

7.격암유록은 어떻게 위조 되었는가?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공식적인 격암유록의 출처를 살펴보자.

① 격암유록 원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古 1496-4"로 소장되어 있다.
② 격암유록 원문은 갑신년(甲申年) 윤사월(閏四月) 병신일(丙申日)인 1944년 6월 1일, 충남 서산군 지곡면 도성리의 전성후인(全城后人) 이도은(李挑隱)이 필사한 것이다.
③이도은에 의하면 이도은이 필사한 당시 격암유록 진본(眞本)은 불태워져  소실되었다고 한다.

위의 내용은 이도은의 이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그럼 이번에는 이제까지의 추리과정에

1995년 9월 26일 MBC 문화방송국의 PD수첩에서 고발한 내용 "위대한 예언서인가? 희대의 조작인가?"를 살펴보자...
위의 이도은의 필사본은 1944년에 이도은이 쓴 것이 아니라. 1977년에 이도은이 의도적으로 국립도서관에 집어 넣은 필사본이라고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이도은은 현재 신앙촌의 신자이며 자기종교에  유리하도록 고쳐서 1977년에 선전용으로 국립도서관에 넣었다는 것이다.

어떤책에서는 책이 1977년 입고된후의 기록으로 1992년 대선을  이용하여 격암유록의 진위를 밝히려 했으나 앞에서 본것과 같은 억지였고
같은 해석을 모든 책을 펴놓고 보았으나 10여권의 책이 모두 10여개의  해석을 하였다.(니맘대로해석)

8.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격암유록」원본
 
많은 사람들이 「격암유록」을 예언을 그대로 믿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격암유록의 예언들이 실제 역사적 사실들과 신기하게도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격암유록 원본을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립도서관 고서(古書)코너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국립도서관'에 그것도 '고서코너'에 있는 책이라니 누가 감히 의심하겠는가?
필자(김하원:위대한 가짜예언서)은 몇 년전에 그 책이 정말로 450년 전에 쓰여진 것인가를 확인해보기 위해, 직접 국립도서관을 찾아가  대출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신씨의 격암유록 해독서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원문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원본의 내용을 대조해 보고, 정확하게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록으로 실려 있는 원문은 원본을 복사해서 실은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김하원) 도서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오래 전에 쓰여져야 고서로 분류됩니까?"
그러자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출판연대나 저작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본방식에 따라 고서로 분류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요즘 나오는 책들처럼 접착제나 철사를 박아 제본된 것이  아니고, 옛날 책처럼 끈이 표지 겉으로 드러나도록 묶어서 제본된 것이면  고서로 분류되지요."
정말 뜻밖이었다. 직원의 말대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한문으로  글을 쓰고, 옛날식으로 제본해서 책을 만들어, 고서라고 하면서 도서관에  기증하면 고서로 분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방법이  가장 간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TEk. 도서관에서 일일이 고서의  출판연대를 고증하기도쉽지 않으려니와, 대충 엣날식으로 제본되고 종이의  빛이 바래있으면 고서라고 해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김하원)는 원본이 언제 도서관에 들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원본의 표지에 국립도서관 도장이 찍혀  있었고, 등록일자가 1977년 6월 7일로 기재되어 있었다.
사무실의 도서등록대장에도 '1977년 ○월 ○일 이○○증'(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격암유록 원본은 1977년에 비로소 국립도서관에 들어왔던 것이다.
(「격암유록의 현대적 조명」에는, "당시 조선총독부 중앙도서관 고서목록 古496호라는 관인이 선명하게 찍힌 것을 확인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목록번호는 맞지만 관인은 분명 국립도서관 것이다. 짐작컨대 고서라고 하니까 조선총독부 것이겠지 하고 착각했든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필자는 다시 직원에게 물어 보았다.
"이 책이 진짜 예언서가 맞습니까?"
직원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대꾸했다.
"아니, 도서관에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 수 있습니까? 도서관은 책을  구비해 놓고,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곳이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리는 곳은 아니잖습니까?"
듣고보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예를 들면, 과학이나 의학에 관한 책이나 논문만 해도 수천 수만 권이  될텐데, 도서관에서 무슨 재주로 그 책의 내용이 맞는 지 틀린 지를 판정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격암유록 원본이 국립도서관 고서코너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 책이 정말  옛날에 쓰여진 것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9. 최초의 선교사 마테오리치
 
최초의 선교사인 마테오리치가 중국에 건너간 것은 남사고가 죽은 11년 후인 1582년 이었다. 당시 그는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하지는 않았으며,
「천주실의」같은 교리문답서만을 발행하였다. 그 후 200여년이 지난 1810년에야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이 한문으로 번역되었으며, 신약의  전편이 번역된 것은 1814년이었다.
결국 남사고가 「격암유록」을 쓸 당시는 성경이 중국에 전래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10.신앙촌과 전도관을 선전하기 위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가짜임으 모르고 본다면 매우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위작이라는 것을 알고 본다면, 그 내용이 무슨 목적으로  쓰여졌는지를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격암유록」에는 말세성인이  목인(木人) 즉, 박씨(朴氏)라고 여러번 언급되어 있는가 하면, 박씨라는  사람의 이름 세글자가 파자(破字)로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씨가  세운 종교단체의 이름도 역시 파자로 나오고, 그들이 집단 생활하는 곳의  지명·도시명·동네명 등이 너무도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격암유록에서 말하고 있느 말세성인은 바로 신앙촌으로 유명했던  박태선(朴泰善)장로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 신앙촌이 있는 부천과 관련된 지명들인 '인부간(仁富間:인천과  부천 사이)', '평천간(平川間:부평과 부천 사이)', '소사(素沙:신앙촌이 있는  곳의 지명)', '계수(桂樹)와 범박(範朴)'(신앙톤이 있는 곳의 동네이름),  '소래산(蘇來山)과 노고산(老姑山)' (신앙촌 주위에 있는 산 이름)등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진정한 도(道)가 있는 곳은 '전도관(傳道 : 박태선장로가 세운 교회의 정식 명칭)'이라 하고 있으며, '신앙톤(信仰村)'을  변형시킨 '신천촌(信天村)'이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사상이 자주 언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도관의  교리도 곳곳에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격암유록이 신앙촌에서 전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것은 격암유록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바로 '박태선'이란 사실이다.(박태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성씨만으로 언급되고 있다.)
다음 구절에 '박태선(朴泰善)'이 파자로 되어 있다.

最好兩弓木人으로 十八卜術誕生하니
三聖水源三人之水 羊一口의 又八일세

"최고로 좋은 궁궁십승(弓弓十勝)의 목인(聖人을 말함)으로
박(朴:十+八+卜)씨가 탄생하니, 유불선(儒佛仙) 삼성(三聖)의 근원이
되는 '태(泰:三+人+水)'와 '선(선:羊+一+口+八)' 즉 '태선'일세."(挑符神人)
또한 '전도관(傳道 )'이 파자로 표현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격암유록」은 박태선장로와 그가 세운 신앙촌과
전도관을 선전하기 위해 조작된 가짜 예언서인 것이다.

11.격암유록이 쓰여진 시기

정확한 때를 알 수는 없지만, 원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먼저, 기껏해야 100여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한자 단어나 일본식  한자가 많다는 점에서,적어도 개화기 이후나 일제시대 이후에 쓰여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이 예언서가 일제시대 때 쓰여졌거나, 혹은 원본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1944년에 필사(筆寫)된 것이라고 해도, 이 책은 정말 대단한  예언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예언서에 나오는 해방이후의 역사에 관한  예언들이 모두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이 책에서 예언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모두 5.16구테타 이전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예언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예언서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2020년대에 온다고 했으므로, 그 때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예언이 적어도 몇 가지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대해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떤 해독서에 보면'88서울 올림픽도 예언되어 있다고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필자(김하원)는 자신인게 말할 수 있다. 이 예언서에는  서울올림픽과 관련된 부분이 없다 단지 해독한 사람이 자의적으로 그렇게  해독했을 뿐이다.따라서 이 예언서는 5.16구테타 이후에야 쓰여졌다는 새로운  추정이 가능하다.

다음으로 박태선의 행적을 살펴보면, 보다 더 정확한 작성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격암유록」에는 성인이 옥고(獄苦)를 치룬다거나, 재혼한다는 등의 내용이  나오고, '성인이라고 왜 불초자식이 없겠는가?"라는 뜻이 담긴 구절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박태선은 1960년대 초에 두 번 옥고를 치뤘고, 또한 1975년에는 그의 장남 박동명이 여대생·연예인들과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따라서 이 책은 1975년 이후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격암유록의 원본이 국립도서관에 등록된 때가 1977년이므로, 1975년 이후부터 1977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의 완성연대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쓰여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이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예언서를 1∼2년 사이에 완성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격암유록은 신앙촌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박태선과 전도관을  선전할 목적으로 쓰여졌으며, 1975년부터 1977년 사이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진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책을 450년 전에 쓰여진 위대한 예언서라며 신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도 재미있는
사실인가?

12. 격암유록을 국립도서관에 기증한 사람

국립도서관의 원본에 적힌 기증자에 대한 것은 제일 뒷편에 있는데

甲申 閏四月 丙申 갑신년 윤사월 병신일
西山郡 地谷面 桃星里 서산군 지곡면 도성리
全城后人 李桃隱 複寫 전성후인 이도은 복사

이 말은, 갑신년 윤사월 병신일에 서산군에 사는 이도은 이란 사람이  격암유록 원본을 손으로 베껴 썼다는 말이다.
갑신년이라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1944년, 1884년, 1824년.....등 60년마다 갑신년이 있다.
그런데 만세력을 찾아보니 1944년 갑신년 윤사월이 들어 있고, 병신일이  있었다. 즉 1944년에 베껴 썼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혹시 이사람에게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찾아간 것이다.
이사람은 90이 넘은 사람이었고 신앙촌에 살고 있었다.
필자가 확인하기 위해 이도은 할아버지가 맞으시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이름은 이용세라고 했다.(이도은은 가명으로 신앙촌이 있는 부천의 별명인 복숭아골에 숨어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지은 듯하다.) 그러면 고향이  서산군 도곡면이고, 큰 아느님께서 모대학교수가 맞느냐고 묻자, 바로  그렇다고 하였다.
필자(김하원)은 노인의 방으로 들어가 큰절로 인사를 드리고, 「격암유록」 때문에 왔노라고 말씀드렸다. 노인은 제대로 찾아왔다며 반가워 했다. 연제를 물으니 여든 여덟이라고 하셨다.
'이런, 이런, 아들이라는 사람이 거짓말로 연세를 10살이나 올려 말하고
이렇게 정정하신데도 거동도 못 하고 말도 못한다고 했다니.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나도 어리석었지.'
이렇게 해서 이도은 노인을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 분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단정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 생각에는 격암유록은 위서입니다. 저는  이사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무슨 증거라도 있으시오?"
"예, 증거는 많습니다. 가령 한글이 옛날식 한글이 아니고, 기껏해야  일제시대 때의 한글이라는 것도 한 증거지요 그리고 또......"
"......"
"현재 국립도서관에 잇는 격암유록을 할아버지께서 복사하신 게 맞지요?"
"음, 그래. 그건 내가 쓴 것이야."
"그럼 도서관에 기증한 사람도 할아버지가 맞지요?"
"그래, 그대 내가 갖다 넣었어."
"그럼 혹시 원본은 어디에 있는 지 아십니까?"
"원본? 원본은 불타버렸어."
"...."
"..."
"할아버지, 제가 볼 때는 그 책에서 말하는 말세성인이 박태선장로가
분명합니다. 할아버지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그래, 그 말이 맞아. 그 책은 박태선을 빼놓고는 풀리지 않는 책이야.
나도 그 책을 보고서 그 많던 전답 다 팔아 치우고 여기 들어왔어.
박태선을 빼고는 풀리지 않는 책이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모두들 그 책을 처음  해독한 사람의 주장대로 정말 대단한 예언서로만 알고 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늘천(天)보고 따 지(地)라고 해도 모를 사람들이니."
"......."
"이제 대들보(박태선을 말함)가 무너졌는데, 무슨 수로 그 예언서가  진짜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대들보가 무너졌는데....... 나도 처음에는
여기에 들어오면 정말 영생하는 줄 알았지.
그래서 그 많던 재산들을 모두 헐값에 팔아치우고 들어 왔는데, 지금은  이 오두막집 하나만 달랑 남았다네. 사실은 이것조차 내 소유가 아니고
신앙촌 것이야. 괜히 자식들만 고생시키고......"
필자(김하원)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도 알 것은 알아야겠기에 또 몇 가지를 물었다.
"할아버지, 그 책을 도서관에 기증한 것은 무슨 목적이었습니까?"
"음, 그건, 그때 누가 나보고 갖다 넣으라고 해서 그랬어."
"신앙촌과 박태선을 선전하기 위해서요?"
"그래, 그럴 생각이었지."
그러면서 그 동안 신앙촌에서 그 책과 관련되어 일어났던 몇 가지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1977년 경에 조성기(趙聖紀)라는 사람이 격암유록에 박태선장로가  말세성군이라고 예언되어 있다면서, 그 내용을 해독해서 책으로 펴내
신앙촌 사람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박태선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후에 조○○는 자신의 이름자와 같은 글자가 「격암유록」 에 들어 있다면서,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 가사총론>에 나오는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大聖紀元二九時에
그러자 박태선장로는 크게 노발대발하면서, 그 책들을 모두 불살라버리라고
했다 한다. 그 후 조씨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나가서, 새로운
종교를 차리고 교주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촌에서는 이들을 '책패'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 말은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단순히 책만가지고 자신이 성인이라고 주장하는 책패거리란 뜻이다.

또다시 물었다.
"자하도 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박태선장로가 말하길 만약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신앙촌  주위 30리를 붉은(자주빛) 안개로 둘러 싸면 적군이 쳐들어오지 못한다고 그랬어. 그래서 자하도야."
"삼신산'이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그건 혹시 실제로 있는 어느 산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 맞아. 소래산, 노고산, 그리고 저 쪽에 있는 성주산을 삼신산이라고 하지."

할아버지는 격암유록의 내용을 훤히 꿰뎔?있었다.

노인들이 알고 있는 남사고 
 남사고는 두 개의 비결을남기고 있다.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菴山水十勝保吉之之)와 「남사고 비결」이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들에게 "격암유록은 대략 20년전에 만들어진  가짜 예언서 입니다."라고 하면. "무슨 소리요?내가 젊었을 때인 몇십년 전에도  노인들로부터 「남사고비결」이란 소리를 많이 들엇는데"하며 잘 믿으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그 분들이 들었던 것은 「격암유록」이 아니다. 「정감록」에서  소개하고 있는 수십개의 비결 가운데 하나인 「남사고비결」일 뿐이다.
일부백과사전에도 다소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항목 옆에 남사고비결의  사진이 있고, 남사고비결, 남사고지음, 필사본, 규장각도서'라는 설명이 실려  있는데, 이는 분명 「격암유록」이 아닌 「정감록」에 있는 「남사고비결」이었다. 실제로 남사고비결과 격암유록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단지 「격암유록」에서 「남사고 비결」에 나오는 단어나 구절들을 조금씩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격암유록」이 「정감록」, 「토정가장결」, 「남사고비결」등의 옛 비결들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결말 


 위에서 언급된 책들 말고도 여러 가지가 많다.
이러한 격암유록을 예언하는 책들까지 조작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퇴계 이황의 비결서 까지 나돌고 있다.
유학의 대가인 이퇴계가 난잡한 "비결서"를 썼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율곡의 비결서를 일간지에 연재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내용을 읽고서도 아직도 격암유록이 남사고가 썼으며, 위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
이 글을 읽으시는 님께서의 정신건강을 체크해 보라.......
오직 진실은 논리와 합리 그리고 객관적인 통찰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0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