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5-09-18 (금)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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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도교 순교자 명단 1



백 인 숙 전도사


1917년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했으며, 평양여자신학교와 일본 요꼬하마여자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주기철 목사를 모시고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있으면서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수난을 겪었다.
6·25가 일어나기 며칠 전 공산당에게 장수은 전도사와 함께 연행되어 살해되었다. 





서 두 성 목사


1920년 2월 11일(음) 경북 영주군 풍기에서 출생. 서울 신학교를 졸업, 배임교회 목사로 시무하며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고 교회를 사수하던 중 패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수원 근교 야산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손 양 원 목사


1902년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경남 함안에서출생했으며 장로회신학교를 졸업, 나환자 애양 원교회를 시무하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5년간옥고를 치렀으며 해방과 함께 출옥하였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었으나 범인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아 "사랑의 원자 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6·25때 공산군에게 총살 순교하였다.
 




신 석 구 목사


1875년 5월 3일 충북 청주군에서 출생, 감리교 목사로 서울 수표교회를 시무하면서 33인 민족 대표로 2년반의 옥고를 치렀다.
해방 직후 3·1절 방송 사건으로 북한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으며, 반동결사회 조직의 혐의로 진남포 중앙교회 사택에서 연행되어 1950년 10월 10일 총살되었다.





오 계 환 장로


1912년 10월 7일 전북 고창에서 신앙의 가정 오병권의 2남으로 출생하여 보통학교를 졸업, 바 쁜농사일을 하면서도 교회봉사를 우선하는 철저한신앙의 소유자이다.
1949년 10월 2일 장로가 되었고, 6·25동란중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하실에서기도하면서 사수 하다 후퇴하는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1950년 10월 7일 용성리 마을 뒷산에서 심한 고문 끝에 생매장되었고, 그의 부인 김금이 집사와 4살난 아이, 9개월된 태아까지 학살되었다. 






오 병 길 전도사


1897년 3월 29일 전북 고창군에서 출생. 숭일학교를 거쳐 광주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양월리 용산,흥덕, 동호교회의 전도사로 시무하였고, 6·25동란중 지하실에서 예배드리던 중 공산당 의 습격으로세부자가 함께 연행되어 동 9월 9일 죽창에 찔려숨질 때까지 신앙절개 굳게 지켰 다. 





오 주 환 집사


1922년 9월 10일 전북 고창군에서 출생.
그의 부친 오병길 전도사와 함께 지하예배실에서 기도중 산당에게 체포되어 돌에 맞고 죽창에 찔려1950년 9월 9일 "이 못난 아들도 하나님 나 라에갑니다. 내 영혼 받아 주소서 아멘."하고 숨을 거두었다. 




윤 임 례 집사


1894년 7월 5일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에서 출생. 맏아들 김용은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하고 천 원교회를 섬겼으며 두암교회를 개척, 충성하였는데1950년 10월 19일 공산당이 두암부락을 습 격하여 대창과 칼과 흉기로 학살하는 현장에서 칼에 찔려숨질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는데 두암교회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악당들이 지른 불구덩이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창 현 영수


1898년 8월 15일 황해도 수안군 천곡면에서출생.
그는 평원교회를 열심히 섬겨 30세에 영 수가 되었고 13년 동안 말씀의 증인으로 봉사자의사명에 충성하던 중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평원리뒷산으로 끌려가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고백하는 동시에 총성과 함 께 구덩이에 매장되었다. 


 

이 현 속 장로


1896년 12월 12일 경남 함안에서 출생. 진주배돈교회 전도사로 시무중 신사참배 반대로 1940 년 8월 19일 체포되어 사천 및 부산 북부경찰서를 전전하며 형언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하 였으며 계속되는 회유와 악형에도 신앙절개 굳게 지켜 1945년 5월 평양형무소 옥고현장에서 하늘나라로 향했다. 





임 인 재 장로


1900년 황해도 황주군에서 출생, 세브란스의전을 거친 의사로서 1938년부터 양매교회 장로로 교회봉사는 물론 애국단체장으로도 활약하였는데 공산당에 의해 유치장에서의 심한 고문에 도 신앙을지켰다.
1950년 8월 8일 새벽 해제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총살되었다. 





장 석 팔 장로


1894년 6월 15일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으며, 1933년 장로가 되어 응봉교회에서 봉사하였다. 해방 후 응봉면장, 국민회 회장 등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던 중 6·25를 만났다.
교인명단을 제출하라는 공산군의 요구를 거절하여 1950년 9월 11일에 돌에 맞아 숨졌다.
1976년 응봉교회에 순교기념비가 섰다. 





전 계 원 조사


1912년 3월 경북 안동에서 출생했으며 경안노회조사로서 신사참배를 반대, 옥고를 치렀고 장 로 호신학교(남산)졸업한 년도에 6·25가 일어나 교회와 교인을 두고 피난을 떠나지 않고 순교를 결심, 섬기던 산정현교회(남산)를 사수하다 7월 16일 교회부근이 격전지가 되었을 때 폭파되었다. 
   




전 덕 기 목사


1875년 12월 8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 1897년 성동교회에 엡윗 청년회를 조직하여 민족운동, 선교활동을 전개, 1907년 민족운동의 요람자인 상동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며 민족운동 및 소외된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헌신하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겪 으며 심한 고문에도 신앙을 사수하였고 "주여! 이 죄인을 구하소서, 나는 천사와 더불어 돌아 가노라."라는 유언을남기고 1914년 3월 23일 숨을 거두었다. 




조 경 의 장로


1891년 11월 2일 서울 서대문 밖 동막에서 출생.
1910년 3월 25일 YMCA 영어학원을 졸업하 였으며 1926년 6월 동막교회에서 장로가 된 후 대한성서공회에 3년 대한예수교서회에 11년 간 근무한 바 있으며 6·25동란으로 핍박받는 교회를 사수하며 경영하던 약방에 찾아온 공산 군에게 전도하다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후 모진 고문 끝에 1950년 8월 4일 총살되었다. 





조 석 훈 목사


1905년 9월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했으며,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은율군 누리 교회목사로 시무하였다.
6·25때 교회를 떠나자 아니했으며, 1950년 10월 15일 공산당에게 총살되었다.
순교자 유족회 초대 회장인 조용택 목사의 부친이다. 




조 용 학 영수


1904년 7월 13일 경남 양산읍에서 출생했으며,1928년 3월 7일 경남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울산언양교회에서 전도사로 일을 보았다.
그 후 진해군 진영읍 교회 영수로 봉사하던 중 신사참 배를반대하여 일경에 체포된 후 모진 고문으로 1940년 8월 14일에 숨을 거두었다. 





주 기 철 목사


1897년 11월 25일 주현성 장로의 아들로 경남웅천에서 출생했으며, 오산학교와 연희전문을 거쳐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으며, 평양산정현교회에서의 "일사각오"의설교는 유명하다.
전후 7년 간의 옥고 끝에 1944년 4월 21일 숨을 거두었다.
순교자유족회 부회장이었던 주영해 장로의 부친이다. 





주 삼 식 전도사


1908년 10월 24일 전남 목포시 옥암동에서 아버지 주경환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목포고등성경학교를 입학과 동시 무안 임성교회(현 목포시 옥임 교회)를 개척하며 목회 중에 1950년 3월 장로회신학교(서울 남산소재)를 입학하여 재학 중 6·25사변으로 1950년 8월 4일 옥암동 섬너리에서 예수선생이라는 죄명으로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인민재판을 받은 후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최 명 길 목사


1907년 전남 신안군에서 출생했으며, 1944년 조선신학원을 졸업하였다.
1950년 7월 23일 목사로 시무 하던 목포 연동교회를 공산군에게 빼앗기자 교인들과 삼호민둥 근섬으로 가 예배를 드리다가 체포되었다.
1950년8월 1일 몽둥이로 타살되었으며, 김계수 장로도 함께 순교하였다. 




최 봉 석 목사


1869년 1월 7일 평남 평양에서 출생했으며,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예수 천당"의 외침 으로 전도의 권능이 있어 "최권능"목사라는 이름이 더적합하다.
1939년 신사참배 반대로 평양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1944년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하늘나라 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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