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했던 몇 개월간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 차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군요.  사람을 홀리는 데는 정말 최적화된 집단인 것 같습니다.

비록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신천지인들과 함께한 시간은 저에게 꽤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된 일정 탓에 몸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고, 인간관계가 그들 위주로 돌아가면서 원래 친하던 사람들과는 관계가 조금 소원해졌으며 주변인들에게 처음으로 큰 거짓말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학업에도 많이 소홀했었고요. 지금부터 하나씩 바로잡아 가야겠죠.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 투성이인데 왜 그땐 알아채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씀을 배운다면서 주변엔 비밀로 하라고 시키는 것, 신앙이 독실하신 분들도 평생 공부하시는 책인 성경을 몇 개월 만에 뗀다는 것, 은근히 종말이 가까워 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신앙을 강요하지 않겠다면서 계속해서 종교적인 행위를 시키는 것, 세상 일보다 영적인 것이 우선이라며 은근히 세상에 소홀해지게 만든다는 것...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신천지임을 알아채고 뛰쳐나왔지만, 제가 낭비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후회도 많이 됩니다. 그때 그 전화를 안 받았다면 어땠을까...성경 공부를 하자고 했을 때 그냥 연락을 끊었다면 어땠을까... 계속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빠져나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 역시 많이 듭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저 자신이 흐려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된 스케줄과 아카데미에서의 주입식 교육 탓에 제가 배우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 따위는 없었고,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일정에 치어 하루하루를 버티기 바빴죠.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빠져나오고 나니 저의 의문들과 주변인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당연한 것이었음에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제 사고를 가지고 저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지고요. 

 신천지에서는 지옥을 말하며 겁을 줬지만, 저에게는 아카데미에 다니던 하루하루가 지옥이었 습니다.  매일 몰려오는 의문들에 고뇌하고 친한 친구들을 속인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으니까요.

비록 바쁜 일정과 신천지 때문에 소홀히 했던 일들 탓에 정신 차릴 여유 없이 현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신천지인 줄도 모르고 아카데미에 다닐 때보다 훨씬 행복하네요.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해 본 종교가 하필이면 신천지였기 때문에 앞으로 신앙을 가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하느님과 예수님이 정말로 계신다면, 아직 분별이 가능할 때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회복 불가능한 시기가 아니라 그나마 고쳐나갈 기회가 있을 때 이런 시련이 닥친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죠.

저는 몇 개월간의 고생과 시간낭비 끝에 신천지 아카데미에서 빠져나왔고, 이 경험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합니다. 저처럼 속아서 다니고 있던 다른 분들도, 신천지인들도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빌며 마무리하겠습니다.